2025. 1. 31. 10:28ㆍ내고향 사천
우산 최영범 선생 기적비
우산 최영범 선생은 1890년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 송전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효당 최범술 선생과는 10촌 관계로, 어려서부터 유교적 가르침과 올바른 인간의 도리를 중시하며 자라셨습니다. 선생님이 곤양사립계명학교(현재의 곤양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22세, 경술국치가 일어났을 당시, 그는 “아는 것이 힘이고, 배워야 산다.“는 신념 아래 지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당시 고향에서 농촌 계몽운동을 펼치며 농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농청과 야학교를 설립하여 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을 진행했고, 개벽지를 보급하여 농민들이 새로운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곤양청년회를 조직하여 젊은 이들이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인식을 갖도록 했고, 사천과 하동을 연합한 노동공제회를 결성하여 소작농들의 권리 보호와 민중 계몽 운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산 선생은 신간회에 참여하여 송진우, 김성수, 김범부 선생들과 교류하며, 국권 회복을 위해 힘썼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을 불러왔고, 그는 온갖 고초와 고난을 겪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노력에 매진했습니다. 특히, 곤양농업보습학원을 창설하여 지역의 농업 교육을 활성화시키고, 육영 사업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우산 최영범 선생님은 평생을 민족의 독립과 농민의 권리 신장을 위해 헌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독립유공자로서의 명예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감 기록이 없다 하여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을 결코 폄하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습니다. 이제라도 지역의 의원들께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묵은 숙제를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우산 선생님의 위대한 공적이 올바르게 평가받고, 그분의 정신이 후대에 제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힘써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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